주역
공자는 역을 왜 공부했을까
천부(泉扶)
2006. 10. 27. 11:35
공자는 50에 이르러서야 易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韋編三絶이라는 古事가 생길 정도이었으니
그가 易에 심취한 정도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때서야 공자는 知天命이라 하였으니 易을 통하여 하늘의 뜻을 깨닫게 되는 시기가 된다.
바꿔 말하면 세상을 덮을 만한 學識과 智慧를 흉중을 담고 여러 나라를 주유했으나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학문이나 지혜로 해결되지 않는 또 다른 무엇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易에 심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당시만 해도 易이란 것이 순수하게 災異를 관찰하고 豫見하는 象數易이 주류를 이루었을 때인데
공자가 易을 연구하여 자신의 학문적 체계로 十翼을 달면서 象數易에서 도덕적 규범을 論하는 義理易이
발생하게 된다.
秦始皇의 焚書坑儒에서도 義理易은 일반 占書의 표지 속에 감춰져 부분적으로 禍를 면하게 되는데
秦始皇은 李斯(이사)의 의견을 받아 통치기반을 견고히 하기 위해 秦의 역사에 관련 것 외에는
다른 모든 통치수단이 되는 서적이나 문서는 모두 불태웠으나 占書, 醫書, 種樹에 관한 서적만은
예외가 되었다.
孔子에 의해 다듬어진 義理易은 그 후 기존의 象數易을 밀어내고 義理易이 정통의 易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되니 象數易은 術로만 남아 면면을 잇게 되는데 뒤에 삼국시대의 위나라 사람인 王弼이라는 청년에 의해 거의 초토화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