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낚시 교실
계용묵의 낚시질 독본
천부(泉扶)
2006. 6. 18. 12:43
계용묵이라는 작가를 아는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그 이름이 낯설어도 ‘백치 아다다’라는 소설은 아실 겁니다.
소설을 모르는 분도 노래방에서 누군가 철모르고 불러대는 옛 노래 중에서 ‘백치 아다다’라는 노래의 한 소절쯤은 들어보셨겠지요? ....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딱딱한 연보(年譜)를 들이 밀겠습니다.
계용묵(1904-1961)은 평북 선천군 출생으로 본명은 하상용입니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1928년 渡日해 일본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했습니다.
1924년 ‘조선문단’ 현상문예에 시 <봄이 왔네>와 <상환(相換)>이 당선, 등단했습니다.
단편 <최서방>을 1927년 ‘조선문단’에, <인두지주>를 1928년 ‘조선지광’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영화와 티비 연속극으로 만들어졌던 <백치아다다>는 193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초기엔 현실성이 강한 경향파적 성격을 띠었으나 후기엔 민족적이고 서민적인 삶의 애환을 형상화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작가의 이력에는 조선일보 기자를 지낸 경력도 있습니다.
지난해 초여름 저는 자료를 뒤지다가 1930년대 붕어낚시의 기법과 미끼 등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한 ‘낚시질讀本’이라는 글을 찾았습니다. 2백자 원고자 18매 분량의 이 글은 계용묵이 종합월간지 ‘朝光’ 1939년 8월호에 쓴 것으로 당시의 붕어낚시 기법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낚시질讀本’에 따르면 당시 꾼들은 11자(3.3m 내외) 길이의 대나무에 무명실을 꼬아 만든 낚싯줄을 낚싯대보다 6치(18cm 내외) 정도 길게 매고, 안으로 휘어들어 잘 걸리는 낚시바늘을 묶은 뒤 여기에 미끼를 달아 붕어를 유혹했습니다.
봉돌은 바늘 위 3cm 지점에 달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납을 의미하는 ‘연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어 이미 이 시기에 찌의 부력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봉돌로 가공이 편리한 납을 쓰고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계욕묵은 이 글에서 다양한 미끼가 있지만 그 중 지렁이가 가장 대중적인 것이었고, 새우는 월척 미끼로 각광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잡고기가 많이 덤벼 성가실 때엔 옥수수를 삶아 눈을 빼서 미끼로 달면 효과가 있었고 씨알도 굵었다고 그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간 새우낚시가 1960년대에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으나 ‘낚시질독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새우가 대중적인 붕어 미끼였음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입질을 파악하는 찌를 시종 ‘깃’으로 일관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새의 깃털을 찌 재료로 사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또 어종에 따라 잘 물리는 자리가 따로 있음을 상기시키며 모래바닥보다 감탕 바닥에 붕어가 잘 붙는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어 필자가 상당히 유능한 꾼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다음은 ‘낚시질讀本’의 원문입니다.
띄어쓰기만 일부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기는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중간 제목은 ‘조광’ 게재시 뽑은 것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낚시질讀本
* 고기는 낚시를 부른다
날이 더우면 그러지 않어도 물이 그리운데 그 물 우에 생선까지 번득이며 뛰노는 것이 보일 때면 낚시질꾼으로선 그 유혹에 아니 끌리지 못한다. 생각만 하여도 서늘한 푸른 물, 그 물 우에 한 척의 배를 타고 둥둥 떠서 한가히 낚시를 물 속에 던저 심신을 다같이 즐길 수 있는 그 한때는 실로 여름 한동안이 아니고는 가저볼 수 없는 것이다.
* 道具는 이런 것이 좋고
낚시의 종류에는 대개 은어를 낚는 장에낚, 메기나 가물치를 낚는 주낚, 그리고 붕어를 낚는 대 낚 등이 있다. 그러나 취미로 볼진대 전 二者가 후의 대낚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니까 취미로서의 낚시질일땐 우리는 아무래도 대낚을 아니 택할 수가 없다.
대낚의 대는 물론 열 한 자쯤의 기리로 끝이 희근 희근하면서도 아주 가벼운 놈을 고르는 것이 낚시질 그것에의 을 좀더 돋우어 줌이 된다. 그리고 줄 역시 낚시대 끝의 힘이 자유로 놀릴 수 있게 가벼워야 좋으나 명주실이나 시장에서 파는 양장 같은 것은 미끼와 마찬가지 고기가 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임으로 게(蟹)같은 놈이 오면 단박에 줄을 잘라먹을 염려가 있는 것이니 낚시줄은 그저 무명실로 꼬아서 쓰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그리고 낚시 바눌은 心자형으로 생긴 놈보다는 원형으로 생긴 놈이 좋으니 心자형은 끝이 어서 생선이 옅게 물리므로 큰놈이 물릴 경우에는 입 가장자리가 찢어질 염려가 있으나 원형으로 생긴 놈은 앞이 기러서 물리기만 하면 영낙없이 골통짬까지 깊이 물림으로 아모리 요동을 친다 하여도 졸연히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낚시를 꾸미는 데 있어선 대보다 줄이 기러도 어도 불편하다. 그저 대보다 여섯치쯤의 기리로 매여야 낚시가 손에 붙을뿐더러 고기의 맥을 노치지 않을 수 있게 빨리도 아니 채여 지는 정도의 촌법이 된다. 연축은 낚시바눌로부터 한치 이상으로 높이 다러서는 고기가 온 때의 맥을 정확이 알 수 없는 것이니 반다시 한치아레로 다르면 다렀지 한치 이상을 올나가서는 재미 없다.
* 미끼에 따라 물리는 고기가 달러
미끼에는 구데기, 파리, 밥알, 새우 등 다수하나 역시 지렁이 우에 가는 놈이 없다. 무었보다 고기는 지렁이에 잘 물린다. 그러나 큰 고기를 낚으려면 지렁이보다는 새우가 좋다. 지렁이에는 적은 놈들이 많이 몰려와 큰 놈이 물 새 없이 자꾸 물리지만 새우는 그 미끼 자체가 크니까 적은 놈은 물지를 못하고 큰 놈에게 미끼를 뻬았기우기 때문에 적은 놈이 들 물린다.
그런데 우에 열거한 미끼에는 천어나, 붕어나, 메기나, 혹은 가물치 등속까지라도 다 물리여 귀치 않은 때가 있다. 그렇지만 강냉이(옥수수)눈을 살머 따서 미끼로 하면 잡것을 다 물리치고 붕어만을 낚을 수 가 있는 것이다. 아니 붕어라도 큰 놈만을 낚을 수가 있는 것이니 큰 붕어가 무엇보다도 그 강냉이 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기나 가물치 뱀장어 같은 것의 낚시에는 미꾸라지나 개고리 같은 놈을 미끼로 쓰는 것이 보담 효과적인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인 것이다.
* 위치에 따라서도 물리는 고기가 다르다
낚시의 위치는 물론 경치가 그럴듯한 자리라야 취미가 더 돋기는 것은 사실이나 고기가 물리지 않으면 그 돋기우는 취미가 아니 깨여질 수 없다. 그러니까 고기가 잘 붙은 곳을 아니 택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떠한 곳에서 고기가 많이 물리나? 모래나 그런 류의 토질이 밑바닥에 깔린 데 보다는 물럭 물럭한 감탕바닥에서 잘 물린다. 고기란 놈들은 굳은 모래바닥보다는 그러한 감탕 바닥에 살기를 좋와하기 때문에 감탕으로 곳잘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큰 놈을 낚으려면 언제든지 물 깊은 곳을 또 찾을 것이니 큰 놈은 물옅우 보다는 물 깊이 살기를 좋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은 물에 지헤를 한 것 깊이 주어 낚시 깃이 겨우 이러서게 만드러 놓은 일이다. 그러나 아모리 큰 놈이라도 메기나 가물치 같은 놈은 붕어류와는 반대로 지헤를 물 옅우 주어야 한다. 그놈들은 적은 고기떼를 농락하기를 좋와하는 습성이 있어서 물 깊이는 잘 사지 않는 까닭이다.
* 네 가지 脈 (맥)
메기나 가물치 뱀장어 망두기 이런 등속이 물리면 두말없이 깃이 물 속으로 드러가지만 붕어류는 그렇지 않다. 대개 붕어맥은 현저한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역시 붕어도 큰 놈은 깃이 드러가 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적은 일이요 대개는 깃을 물우에 띠운다. 그리고 깃을 옆으로 거치는 수도 있고, 또는 깃을 한 절반쯤 끌고 드러가서 한가하게 방아질을 하는 수도 있는 것이니 이러한 때에 낚시를 손빨리 채면 역락없이 고기는 물려 나온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맥을 충분히 짚어냈는 데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기가 아니요 게라든가 그러한 류의 작난으로 단정해도 좋다.
그런데 그 깃이 노는 것으로 보아 큰 놈인지 적은 놈인지를 또 분간해낼 수가 있는 것이니 붕어로서의 맥은 적은 놈이나 큰 놈이나 다같이 우에서 말한 그러한 맥을 하되 적은 놈은 깃을 세차게 놀리고 큰 놈은 한가하게 뜨즉 뜨즉 놀리는 것으로 두 번만 깃이 노는 것을 본다면 그것이 크고 적은 놈인 것을 용이히 판단해 내일 수가 있는 것이다.
* 낚시는 이렇게 채야
그러다 확실이 붕어로서 우와 같은 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는 경우일 때는 그것은 낚시를 채는 그 방법이 서투른 증거일 것이니 맥이 다 되여 낚시를 챌 때에는 기운을 다하야 일시에 채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채는 힘이 너무도 세어서 고기의 입 가장자리가 물 속에서 채이는 그 순간 떠러저 버서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맥이 되면 손빨리 채되 한번 찍긋 빨리 채여 놓고는 그리 급하게 말고 천천히 당기는 것이 고기도 떠러지지 않고 또 낚을 재미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은 놈은 아모렇게 채려도 낚시대 같은 것은 부러질 염려가 없지만 큰 놈인 경우에는 대단이 요동을 함으로 초수는 흔이 대를 꺾이우게 되는 것이니 한번 찍긋 채여서 물린 놈이 큰 것이라고 짐작되거든 좌편으로든지 우편으로든지 그것은 마음대로 어쨋든 모으로 당길 일이다. 그래야 낚싯대가 손잽이 짬까지 휘여 들면서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손잽이까지 휘여드는 큰 놈이라면 또한 그대로 대를 당기어서 그 놈을 끄러낼 수가 없는 것이니 그런 경우에는 낚시대를 뒤로 모라서 한 손으로 줄을 더듬어 잡아가지고 그 줄을 끄러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낚시대도 부러질 뿐 아니라 무처럼 물렸든 그 고기도 떠러지게 말게 될 것이다.
윤곽만에 그치고 마렀으나 대개 이러한 간단한 방법만이라도 체득하고 낚시질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까지는 마음대로 고기를 낚을 수 있으리라 안다.
어떻습니까. 틀만 옛글일 뿐 알맹이는 요즘 낚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낚시질 讀本’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놀랍도록 현대적입니다. 차이는 용어 정도에 그칩니다.
얼마나 일반적인 용어였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계용묵은 입질을 뜻하는 용어로 ‘맥(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장 박동의 감각이 찌가 불쑥 솟거나 꺼지는 동작과 얼마나 닮아 있다는 것일까요. 입질이 낚시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의미 부여에도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채야 잘 걸리는지 설명하기 위해 맥의 종류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장면은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계용묵은 붕어낚시에 정통한 꾼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38년 실직한 그는 어쩌면 상당기간 ‘백수’로서 낚시에 몰두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계용묵은 ‘失職記’라는 단편 소설도 남긴 바 있습니다.
‘낚시질독본’에는 한두 군데 오탈자가 보이고 일부는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늘의 모양이 챔질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세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꾼들이 ‘낚시의 과학’에 눈을 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은 1939년에 쓴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5년 전이지만 이 무렵의 낚시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한 글은 없습니다.
식민지시대의 굴절된 삶과 이어진 한국전쟁의 참화는 그나마 남아 있던 기록 대부분을 앗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작가 계용묵의 글은 그 삭막함 가운데 보석처럼 빛나는 연결고리입니다.
우리 낚시사(史)의 결정적인 맥을 짚어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자료더미를 좀더 뒤져보니 김소월의 시 한편이 있습니다.
낚시를 소재로 한 시는 아닙니다. 어인(漁人- 어부)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 입니다.
어인(漁人)
헛된 줄 모르고나 살면 좋아도
오늘도 재넘어편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 척 길 떠났다고.
작년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
상기 글은 장 창락의 (물위에 쓴 편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그 이름이 낯설어도 ‘백치 아다다’라는 소설은 아실 겁니다.
소설을 모르는 분도 노래방에서 누군가 철모르고 불러대는 옛 노래 중에서 ‘백치 아다다’라는 노래의 한 소절쯤은 들어보셨겠지요? ....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딱딱한 연보(年譜)를 들이 밀겠습니다.
계용묵(1904-1961)은 평북 선천군 출생으로 본명은 하상용입니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1928년 渡日해 일본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했습니다.
1924년 ‘조선문단’ 현상문예에 시 <봄이 왔네>와 <상환(相換)>이 당선, 등단했습니다.
단편 <최서방>을 1927년 ‘조선문단’에, <인두지주>를 1928년 ‘조선지광’에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영화와 티비 연속극으로 만들어졌던 <백치아다다>는 193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초기엔 현실성이 강한 경향파적 성격을 띠었으나 후기엔 민족적이고 서민적인 삶의 애환을 형상화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작가의 이력에는 조선일보 기자를 지낸 경력도 있습니다.
지난해 초여름 저는 자료를 뒤지다가 1930년대 붕어낚시의 기법과 미끼 등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소개한 ‘낚시질讀本’이라는 글을 찾았습니다. 2백자 원고자 18매 분량의 이 글은 계용묵이 종합월간지 ‘朝光’ 1939년 8월호에 쓴 것으로 당시의 붕어낚시 기법을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낚시질讀本’에 따르면 당시 꾼들은 11자(3.3m 내외) 길이의 대나무에 무명실을 꼬아 만든 낚싯줄을 낚싯대보다 6치(18cm 내외) 정도 길게 매고, 안으로 휘어들어 잘 걸리는 낚시바늘을 묶은 뒤 여기에 미끼를 달아 붕어를 유혹했습니다.
봉돌은 바늘 위 3cm 지점에 달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납을 의미하는 ‘연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어 이미 이 시기에 찌의 부력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봉돌로 가공이 편리한 납을 쓰고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계욕묵은 이 글에서 다양한 미끼가 있지만 그 중 지렁이가 가장 대중적인 것이었고, 새우는 월척 미끼로 각광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잡고기가 많이 덤벼 성가실 때엔 옥수수를 삶아 눈을 빼서 미끼로 달면 효과가 있었고 씨알도 굵었다고 그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간 새우낚시가 1960년대에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으나 ‘낚시질독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새우가 대중적인 붕어 미끼였음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입질을 파악하는 찌를 시종 ‘깃’으로 일관되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새의 깃털을 찌 재료로 사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또 어종에 따라 잘 물리는 자리가 따로 있음을 상기시키며 모래바닥보다 감탕 바닥에 붕어가 잘 붙는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어 필자가 상당히 유능한 꾼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다음은 ‘낚시질讀本’의 원문입니다.
띄어쓰기만 일부 현대식으로 바꾸고 표기는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중간 제목은 ‘조광’ 게재시 뽑은 것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낚시질讀本
* 고기는 낚시를 부른다
날이 더우면 그러지 않어도 물이 그리운데 그 물 우에 생선까지 번득이며 뛰노는 것이 보일 때면 낚시질꾼으로선 그 유혹에 아니 끌리지 못한다. 생각만 하여도 서늘한 푸른 물, 그 물 우에 한 척의 배를 타고 둥둥 떠서 한가히 낚시를 물 속에 던저 심신을 다같이 즐길 수 있는 그 한때는 실로 여름 한동안이 아니고는 가저볼 수 없는 것이다.
* 道具는 이런 것이 좋고
낚시의 종류에는 대개 은어를 낚는 장에낚, 메기나 가물치를 낚는 주낚, 그리고 붕어를 낚는 대 낚 등이 있다. 그러나 취미로 볼진대 전 二者가 후의 대낚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니까 취미로서의 낚시질일땐 우리는 아무래도 대낚을 아니 택할 수가 없다.
대낚의 대는 물론 열 한 자쯤의 기리로 끝이 희근 희근하면서도 아주 가벼운 놈을 고르는 것이 낚시질 그것에의 을 좀더 돋우어 줌이 된다. 그리고 줄 역시 낚시대 끝의 힘이 자유로 놀릴 수 있게 가벼워야 좋으나 명주실이나 시장에서 파는 양장 같은 것은 미끼와 마찬가지 고기가 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임으로 게(蟹)같은 놈이 오면 단박에 줄을 잘라먹을 염려가 있는 것이니 낚시줄은 그저 무명실로 꼬아서 쓰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그리고 낚시 바눌은 心자형으로 생긴 놈보다는 원형으로 생긴 놈이 좋으니 心자형은 끝이 어서 생선이 옅게 물리므로 큰놈이 물릴 경우에는 입 가장자리가 찢어질 염려가 있으나 원형으로 생긴 놈은 앞이 기러서 물리기만 하면 영낙없이 골통짬까지 깊이 물림으로 아모리 요동을 친다 하여도 졸연히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낚시를 꾸미는 데 있어선 대보다 줄이 기러도 어도 불편하다. 그저 대보다 여섯치쯤의 기리로 매여야 낚시가 손에 붙을뿐더러 고기의 맥을 노치지 않을 수 있게 빨리도 아니 채여 지는 정도의 촌법이 된다. 연축은 낚시바눌로부터 한치 이상으로 높이 다러서는 고기가 온 때의 맥을 정확이 알 수 없는 것이니 반다시 한치아레로 다르면 다렀지 한치 이상을 올나가서는 재미 없다.
* 미끼에 따라 물리는 고기가 달러
미끼에는 구데기, 파리, 밥알, 새우 등 다수하나 역시 지렁이 우에 가는 놈이 없다. 무었보다 고기는 지렁이에 잘 물린다. 그러나 큰 고기를 낚으려면 지렁이보다는 새우가 좋다. 지렁이에는 적은 놈들이 많이 몰려와 큰 놈이 물 새 없이 자꾸 물리지만 새우는 그 미끼 자체가 크니까 적은 놈은 물지를 못하고 큰 놈에게 미끼를 뻬았기우기 때문에 적은 놈이 들 물린다.
그런데 우에 열거한 미끼에는 천어나, 붕어나, 메기나, 혹은 가물치 등속까지라도 다 물리여 귀치 않은 때가 있다. 그렇지만 강냉이(옥수수)눈을 살머 따서 미끼로 하면 잡것을 다 물리치고 붕어만을 낚을 수 가 있는 것이다. 아니 붕어라도 큰 놈만을 낚을 수가 있는 것이니 큰 붕어가 무엇보다도 그 강냉이 눈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기나 가물치 뱀장어 같은 것의 낚시에는 미꾸라지나 개고리 같은 놈을 미끼로 쓰는 것이 보담 효과적인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인 것이다.
* 위치에 따라서도 물리는 고기가 다르다
낚시의 위치는 물론 경치가 그럴듯한 자리라야 취미가 더 돋기는 것은 사실이나 고기가 물리지 않으면 그 돋기우는 취미가 아니 깨여질 수 없다. 그러니까 고기가 잘 붙은 곳을 아니 택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떠한 곳에서 고기가 많이 물리나? 모래나 그런 류의 토질이 밑바닥에 깔린 데 보다는 물럭 물럭한 감탕바닥에서 잘 물린다. 고기란 놈들은 굳은 모래바닥보다는 그러한 감탕 바닥에 살기를 좋와하기 때문에 감탕으로 곳잘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큰 놈을 낚으려면 언제든지 물 깊은 곳을 또 찾을 것이니 큰 놈은 물옅우 보다는 물 깊이 살기를 좋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은 물에 지헤를 한 것 깊이 주어 낚시 깃이 겨우 이러서게 만드러 놓은 일이다. 그러나 아모리 큰 놈이라도 메기나 가물치 같은 놈은 붕어류와는 반대로 지헤를 물 옅우 주어야 한다. 그놈들은 적은 고기떼를 농락하기를 좋와하는 습성이 있어서 물 깊이는 잘 사지 않는 까닭이다.
* 네 가지 脈 (맥)
메기나 가물치 뱀장어 망두기 이런 등속이 물리면 두말없이 깃이 물 속으로 드러가지만 붕어류는 그렇지 않다. 대개 붕어맥은 현저한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역시 붕어도 큰 놈은 깃이 드러가 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적은 일이요 대개는 깃을 물우에 띠운다. 그리고 깃을 옆으로 거치는 수도 있고, 또는 깃을 한 절반쯤 끌고 드러가서 한가하게 방아질을 하는 수도 있는 것이니 이러한 때에 낚시를 손빨리 채면 역락없이 고기는 물려 나온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맥을 충분히 짚어냈는 데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기가 아니요 게라든가 그러한 류의 작난으로 단정해도 좋다.
그런데 그 깃이 노는 것으로 보아 큰 놈인지 적은 놈인지를 또 분간해낼 수가 있는 것이니 붕어로서의 맥은 적은 놈이나 큰 놈이나 다같이 우에서 말한 그러한 맥을 하되 적은 놈은 깃을 세차게 놀리고 큰 놈은 한가하게 뜨즉 뜨즉 놀리는 것으로 두 번만 깃이 노는 것을 본다면 그것이 크고 적은 놈인 것을 용이히 판단해 내일 수가 있는 것이다.
* 낚시는 이렇게 채야
그러다 확실이 붕어로서 우와 같은 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는 경우일 때는 그것은 낚시를 채는 그 방법이 서투른 증거일 것이니 맥이 다 되여 낚시를 챌 때에는 기운을 다하야 일시에 채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채는 힘이 너무도 세어서 고기의 입 가장자리가 물 속에서 채이는 그 순간 떠러저 버서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맥이 되면 손빨리 채되 한번 찍긋 빨리 채여 놓고는 그리 급하게 말고 천천히 당기는 것이 고기도 떠러지지 않고 또 낚을 재미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은 놈은 아모렇게 채려도 낚시대 같은 것은 부러질 염려가 없지만 큰 놈인 경우에는 대단이 요동을 함으로 초수는 흔이 대를 꺾이우게 되는 것이니 한번 찍긋 채여서 물린 놈이 큰 것이라고 짐작되거든 좌편으로든지 우편으로든지 그것은 마음대로 어쨋든 모으로 당길 일이다. 그래야 낚싯대가 손잽이 짬까지 휘여 들면서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손잽이까지 휘여드는 큰 놈이라면 또한 그대로 대를 당기어서 그 놈을 끄러낼 수가 없는 것이니 그런 경우에는 낚시대를 뒤로 모라서 한 손으로 줄을 더듬어 잡아가지고 그 줄을 끄러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낚시대도 부러질 뿐 아니라 무처럼 물렸든 그 고기도 떠러지게 말게 될 것이다.
윤곽만에 그치고 마렀으나 대개 이러한 간단한 방법만이라도 체득하고 낚시질을 시작한다면 어느 정도 까지는 마음대로 고기를 낚을 수 있으리라 안다.
어떻습니까. 틀만 옛글일 뿐 알맹이는 요즘 낚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낚시질 讀本’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놀랍도록 현대적입니다. 차이는 용어 정도에 그칩니다.
얼마나 일반적인 용어였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으나 계용묵은 입질을 뜻하는 용어로 ‘맥(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장 박동의 감각이 찌가 불쑥 솟거나 꺼지는 동작과 얼마나 닮아 있다는 것일까요. 입질이 낚시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의미 부여에도 쉽게 동의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채야 잘 걸리는지 설명하기 위해 맥의 종류를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장면은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계용묵은 붕어낚시에 정통한 꾼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38년 실직한 그는 어쩌면 상당기간 ‘백수’로서 낚시에 몰두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 계용묵은 ‘失職記’라는 단편 소설도 남긴 바 있습니다.
‘낚시질독본’에는 한두 군데 오탈자가 보이고 일부는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늘의 모양이 챔질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세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꾼들이 ‘낚시의 과학’에 눈을 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은 1939년에 쓴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65년 전이지만 이 무렵의 낚시에 대해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한 글은 없습니다.
식민지시대의 굴절된 삶과 이어진 한국전쟁의 참화는 그나마 남아 있던 기록 대부분을 앗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작가 계용묵의 글은 그 삭막함 가운데 보석처럼 빛나는 연결고리입니다.
우리 낚시사(史)의 결정적인 맥을 짚어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자료더미를 좀더 뒤져보니 김소월의 시 한편이 있습니다.
낚시를 소재로 한 시는 아닙니다. 어인(漁人- 어부)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 입니다.
어인(漁人)
헛된 줄 모르고나 살면 좋아도
오늘도 재넘어편 마을에서는
고기잡이 배 한 척 길 떠났다고.
작년에도 바닷놀이 무서웠건만. ...........
상기 글은 장 창락의 (물위에 쓴 편지)에서 발췌한 글입니다.